명성철물상사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403-78   
 
 
   

인터넷 철물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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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 아줌마 + 철물점사장 <시인 홍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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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철물점 여자'란 시가 눈에 띄었다.
시인이면서 아줌마인데 아름다운 철물점의 주인이기도 한 홍정순이란 분의 시다.
마음이 찡했고 주인공의 블로거를 찾아가 프로필도 읽고 사진도 봤다.
글솜씨가 좋은 사람을 항상 존경하는데 이 분도 시인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프로다.
프로 글쟁이가 쓴 철물점 이야기들은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내 인생의 일부를 꼬박꼬박 찍어낸다.
시인의 허락을 얻어 이 곳에 글을 옮긴다.

*홍정순님의 블로그 : http://blog.daum.net/deel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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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 여자
                   홍정순

예외 없다 사람 손 가야 비로소 제값 하는
무수한 연장들 틈새에서 시 쓰는 여자가 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못 팔아야 살지만 못 팔아도 사는 여자
십 년 전 마음에 심은 작심(作心)이라는 볼트 하나
너트로 한 바퀴 더 조여야 하는
사월은 성수기
작업 현장에 연장이 필요하듯
여자에겐 시간이 절실하다
시를 쓰겠다고 한 시간 일찍 나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를
고요 속 새벽이 빨아들인다
뒤란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흙집을 개조한 철물점 기와지붕엔
아직도 이끼가 끼어 있어
늘 기역자로 만나야 하는 새 소리는
어긋나 포개진 기왓장 틈새에 알 낳고 품었을 그 시간들,
지난 십 년을 생각나게 하는데
용마루 위 일가 이룬 새들의 울음소리에
자꾸만 착해지는 여자
지명 따라 지은 이름 '대강 철물점'
간판 너머엔
적당히 보리밭 흔드는 바람이 불고
멋대로 떨어지는 감꽃도 싱싱하지만
개줄 하나 팔고 앉으면 받침 하나 빠지고
물통 하나 팔고 앉으면 단어 하나 달아난다
오늘도
철물처럼 무거운 시
플라스틱 약수통처럼 가볍고 싶은 시

                     -    2009년 시안 봄호 등단  -


[ 당선 소감 ]
지금으로부터 한국 시단은 (고졸에 단양 촌년인) 나로 인하여 빛날 것이다. (이건, 두 딸의 말이다.) 나는 십 남매의 여덟 번째로 현재 종갓집 맏며느리다. 세 아이의 어미로 모두 배 째고 낳았다. “셋 다 배 째고 애 낳아 봤어?” 내가 내게 힘 줄 때 하는 말이다. 내가 운영하는 철물점은 나의 미모 때문에 항시 손님이 바글바글 끓고 돈도 많이 벌고 있다.

이번 신인상 심사를 하신 심사위원이야말로 훌륭한 분들이다. 한국 시단의 반이 박사이거나 교수인 그 틈에서 너는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내가 웃을 수 있는 것은 나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르는 도떼기시장이 삶의 터전이요, 평생을 파먹어도 고갈되지 않을 철물광산이 내 소유이기 때문이다. 나를 지금껏 이끌어 준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평생 철물 시만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것이다. 그런 자원을 가진 나를 알아본 심사위원들의 높은 안목이야말로 한국 시단의 밝은 미래와 희망이 아닐까 한다.

이제 시안은 나 때문에 더욱 유명한 잡지가 될 것이다. (이건 책을 몇 백 권 사겠다고 덤비는 남편의 말이다.) 남편은 단양 중․고 동창회장에 청년회장을 지낸 사람으로 그의 주변을 손가락으로 세며 잡지를 몇 백 권이나 주문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 소백산 등산로 초입에서 ‘비로봉식당’을 하며 새밭에 사는 둘째오빠는 향어를 잡을까 송어를 잡을까 토종닭을 잡을까, 〈등단 기념 파티〉를 열어 주겠다고 난리다. 십 남매, 그러니까 조카들까지 하면 이미 40명이 넘는 친정 식구들과 우리 철물점 거래처만 해도 수십 곳이다. 잡철물 성광 사장, 우리건재 사장, 천지포장 사장과 전기 가야 사장, PVC 태전 사장, 백경 사장과 플라스틱 기물 대흥물류 사장, 수도 고려 사장 등등 축하 전화와 함께 환심을 사려고, 잡지를 사겠다고 한 난리다. (빼먹었다고 난리칠 주변 사람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시안은 재판을 찍어야 한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줄곧 내게 큰 그늘로 서 계신 큰오빠는 이번엔 등단 상금의 열 배의 금일봉을 주겠다고 한다. 10형제 모두가 다 뭘 못 해주어 난리다. 십 남매의 여덟 번째로 태어난 나를 딸이라고 엎어서 윗목으로 밀어 놓으셨던 나의 어머니께선 등단 축하 현수막을 친정집 마당에 걸겠다고 하신다. 내 마음은 지금 매일 만지는 게 돈이지만 이 당선금 50만원을 어디에 쓸지 萬化方暢 중이다.

남편은 벌써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고 한다. 시단 모임은 될 수 있으면 자제하라고 한다. 한국 시단이 傾國之色인 나로 인해 시끄러워지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말 그럴까, 나의 미모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충북 단양의 대강철물점으로 오면 된다.(이건, 내 말이다)

그렇다, 모두 웃자고 하는 말이다. (아니다, 이건 비슷비슷한 당선소감은 피하라고 부추긴 선생님의 말이다.) 이제, 나는 내게 주어진 철물점 일 열심히 하며 녹은 슬지 모르나 변치 않는 철물 같은 시를 쓰려고 한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탐석하는데 좋은 빠루나 하나씩 선물할까 한다.

†약력
   -이름 : 홍정순(洪貞順)
   -출생 : 72년 충북 단양 生
   -주소 : 395-813 충북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 114-1 〈대강종합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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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 여자  2
                    홍정순

밥 해 주는 여자가 되고 싶다

중국교포와 결혼해 다 털어 먹은 이 목수

몇 달 전 위암으로 사별한 전파사 조 씨

몇 끼를 먹어도 배고플 죽령부대 유 일병

머슴밥을 고봉으로 해 먹이고 싶다



주걱을 잘 놀리는 여자가 되고 싶다

반찬도 조물조물 집어 놓고

뜨거운 국그릇도 잘 놓는 여자가 되고 싶다

시멘트 배달 다녀온 남편도 남편이지만

버스 시간 맞추느라 때를 넘긴 지희 할아버지에게는

진 밥을 드리고 싶다


(주걱밥을 서서 먹는 내 밥그릇도 한 번 제대로 푸고 싶다)


자장면 한 그릇 먹는 것을 겁내는 연지 할아버지

개 밥 걱정이 먼저인 웅이 할머니

제 몸뚱이를 움직여 생의 녹을 터는 철물 같은 사람들

금도금도 은도금도 못하고

스테인리스는 더더욱 아닌 사람들

젖은 파지 같은 사람들에게

오곡밥을 그것도 고봉으로 퍼주고 싶다


바구미 생긴다고 4키로짜리 쌀을 파는 세상

오직 밥심으로 사는 순금 같은 사람들에게

사골 고는 내 나는 잡곡밥을, 대놓고

먹이고 싶다


brgynekc
 [2013/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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